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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한인 2세 정치인 지원하자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이제 선출직 공직에 출마하는 한인 후보의 대부분은 2세들이다. 한인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2세들이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1960~80년대 성인이 된 후 미국에 온 1세들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눈앞에 둔 경우가 많다.     한인 2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계에 진출하려는 2세들이 많아진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부모 세대의 교육열 덕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사회적 이슈에 눈을 뜨고 정치판에서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나서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도 소수계라는 한계로 고민한다. 소위 말하는 ‘주류’에서 배제되거나 인종 차별적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정계 진출을 결심하는 것도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2세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1세 어른들의 지원이다.      선거를 치르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출마자들에게 정서적 지원은 물론 재정적 지원도 중요하다. 그런데 1세와 2세 사이에는 약간 간극이 있어 보인다.      한인 사회의 일부 ‘어른’들은  2세들의 출마를 ‘사적인  도전’ ‘개인 커리어용’ ‘남의 일’로 치부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물론 정치인은 특정 커뮤니티가 아니라 지역 주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커뮤니티 차원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3월 가주 예비선거에 출마한 비현역 한인 2세 출마자들의 ‘실탄’은 매우 열악했다. 그들은 기금이 잘 모이지 않아 예선 통과를 우선 목표로 하고 결선에 집중하겠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예선에서 결집하지 않은 지지세가 본선에서 극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일부 유권자들은 예선에서 지지한 후보가 탈락하면 본선에서는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영향으로 2위로 예선을 통과한 후보가 본선에서는 1위를 기록하는 역전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2위 후보가 총력전을 펼쳐야 가능한 일이다. 총력전은 자금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고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을 소환하기도 한다. 어려서 미국에 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업가였던 홍 이사장은 생전 한인 후보에 실탄을 잘 지원해줘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홍 이사장이 주머니를 열면 다른 1세들도 동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후보들이 선거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는 더욱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당장 홍 이사장 같은 인물이 한인사회에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기틀을 다질 수 있는 움직임은 누군가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을 후원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부 공연 기획자들은 미국 비자 문제의 편의를 위해 이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특정 의원에게 기부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리커 라이선스 문제에 대비해 시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한다는 사람도 있다.       한인 1세들이 2세들을 지원하는 것은 한인 사회가 차별당하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2세 후보를 왜 지원하냐는 반응은 이제 자제하면 좋겠다. 십시일반 우리가 한인 후보에게 보이는 관심은 다른 유권자들에게 한인 사회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방법이 된다.   앞으로는 그것이 예선이든 본선이든 여유가 되는 만큼 지원하자. 그러고 나서 잘못한다면 꾸짖고 고쳐주자. 그것이 지금 1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한인 사회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고 정치권 전체가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할 것이다. 독자들 모두 11월 결선 무대에 나서는 한인 후보들에게 적은 액수라도 꼭 지원하길 기대한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정치인 한인 한인 후보 한인 사회 비현역 한인

2024-04-02

“차세대 진로 설정, 가치관 확립 도울 터” 코윈OC 청소년 멘토링 워크숍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OC지회(이하 코윈OC, 회장 성민희)가 오는 16일(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풀러턴의 오렌지한인교회(643 W. Malvern Ave)에서 청소년 멘토링 네트워크 워크숍을 개최한다.   코윈OC 측은 이 행사를 통해 한인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차세대에게 청소년기에 필요한 조언과 격려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멘토는 전문 직종에서 활동하는 한인 2세와 3세로 총 9명이다. 조셉 강 OC법원 판사, 김단비 연방 검사, 리드 스미스 로펌의 파트너 미셸 류 변호사, 코인베이스 벤처스의 저스틴 이 투자가,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 고아라 외상외과의, 스텔라 조 CVS 매니저 약사, 케이 고 전 백악관 자문위원, 홍예솔 카이저 병원 너스 프랙티셔너, 브리검영 대학교 응용수학 박사 과정 조성은씨 등이 멘토를 맡았다.   코윈OC 측은 한인의 정체성이 확고하며 한인 커뮤니티에 애정을 가지고 후배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철학이 있는 이들을 멘토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성민희 코윈OC 회장은 “경제적, 사회적 성공이 아닌, 어떤 삶이 성공적 삶인지 청소년에게 알려줄 이들을 멘토로 선발했다. 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는지 경험을 공유하면서 청소년들이 인생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워크숍에 참석할 청소년들이 앞으로 성장해 다음 세대의 멘토 역할을 맡는 것이 한인 사회의 새로운 전통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워크숍 당일 접수와 입장은 오전 9시30분에 시작된다. 워크숍은 같은 직업군에 속하는 멘토들이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패널 토론 형식으로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오후 12시30분 점심에 이어 오후 1시30분부터 각 직군별 교실로 이동해 멘토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다.   코윈OC 측은 한인 중, 고등학교 학생의 참가 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부모도 함께 참석할 수 있다.   참가비는 점심과 음료수, 스낵을 포함, 30달러다. 참가 신청 및 문의는 이메일(kowinoc2024@gmail.com)로 하면 된다. 코윈OC 홈페이지(kowinoc.org)에서 신청할 수도 있다.   이 행사는 LA총영사관과 코리안아메리칸재단이 후원한다.차세대 가치관 청소년 멘토링 한인 사회 한인 커뮤니티

2024-03-07

[사설] 한인 사회의 지지 더 중요해졌다

가주 예비선거가 5일 끝났다. 주요 선출직의 11월 본선 진출자가 결정됐고, 일부 로컬 정부는 당선 확정자도 나왔다. 특히 이날은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수퍼 화요일’이기도 해 전국적으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의 ‘리턴매치’가 사실상 결정되면서 11월 본선거를 향한 레이스도 한층 뜨거워졌다.       이번 예선에서 한인 후보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LA시의회 12지구 선거에 나선 존 이 시의원은 지지율에서 경쟁자를 압도, 예선에서 당선을 확정 짓는 희소식을 전했다. 또 많은 한인 후보들이 본선행에 성공했다. 연방하원선거에서 영 김, 미셸 박 스틸 의원은 각각 압도적 지지율로 본선에 진출, 3선 고지에 청신호가 켜졌다. 역시 연방하원의원에 도전하는 데이브 민 후보와 데이비드 김 후보 역시 본선 진출이 결정됐다.   또 한인타운이 포함된 LA시의회 10지구에 도전한 그레이스 유 후보도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 이밖에 주의원과 판사직 등에 도전한 한인 후보들도 선전을 펼쳤다.     올해 선거는 높아진 한인 사회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준다. 우선 남가주 지역만 보면 후보 숫자가 역대 최대 수준이다. 도전하는 포지션도 연방하원의원을 비롯해 주의원, 시의원, 판사 등 다양하다. 그동안 한인 사회가 정치력 신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성과다.     한인들은 커뮤니티 권익 향상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11월 본선에 진출한 한인 후보들이 꼭 당선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그런데 후보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본선거에서는 한인 사회의 적극적인 지지가 더 중요하다.   모든 유권자는 빠짐없이 한표를 행사하고, 한인 후보에 대한 후원도 필요하다. 정치력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설 한인 사회 한인 사회 한인 후보들 압도적 지지율

2024-03-06

[중앙칼럼] 우리도 자부심 느낄 이민사 있다

한인 초기 이민자의 묘소를 취재하러 지난달 하와이를 다녀왔다. 단지 한인 이민 120주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실제 그곳에서 본 이민사의 흔적은 세월에 의해 닳고 닳아 희미해지고 있었다. 한인 선조들의 묘비는 부서지거나 방치된 채 잡초와 수풀 속에 가려져 있다.   한인 이민사는 오늘날 완전히 양상이 변했다. 102명으로 시작됐던 한인 이민 역사는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숫자적으로만 봐도 200만 명을 넘어섰다. 곳곳에 한인 사회가 형성돼 있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한인도 많다. 어디를 가나 한국 제품, 음식, 콘텐트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이민 생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단, 이민 역사의 뿌리를 알고 보존하려는 의식이 부족한 건 아쉬움이다.   하와이에 앞서 중국계 이민자들의 지워질 뻔한 묫자리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갔었다. 〈본지 10월30일자 A-1·3면〉 당시 취재 중 만난 중국계 대부분은 이민 3세, 혹은 4세들이었다. 겉모습만 아시안일 뿐이지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완전히 미국화된 이들이다.   그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중국어를 잃은 지는 오래됐지만, 뿌리(정체성)와 이민 선조의 역사를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였다. 오리건 주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첫발을 내디딘 땅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철도를 부설하고 도로와 강둑을 건설했다. 중국계 후손들은 이민 선조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이 곧 이민 역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다.   그 때문에 중국계 커뮤니티는 콘도 단지로 개발될 뻔했던 선조들의 묘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 커뮤니티처럼 체계적인 뿌리 교육을 받아 이미 미국화된 후손이라 해도 ‘차이니스-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이는 모두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인 사회는 어떤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민 역사가 있다. 1900년대 초였다. 오늘날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모든 게 열악한 시기였다. 당시 유교문화권에서는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난다는 건 뿌리를 들추어내는 일로 생각했다. 그 뿌리를 이역만리 땅에 옮겨 심으려고 종일 땡볕에서 고된 농장 노동을 감내했던 이들이 한인 초기 이민자들이다.    당시 사회적 하층민들이 농장 노동자로 온 것 같지만, 행적을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선각자였다. 당시 노동자 월급은 약 16달러에 불과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때 돈으로 무려 2000달러를 마련했다. 그들은 당시 300명 이상의 한 달 치 봉급과 맞먹는 액수를 모아 학교부터 세웠다. 또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 자금의 2/3를 조달했다.   한인 초기 이민자들은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 노력했다. 훗날 그들의 자녀는 미군으로도 복무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했다.         한인 이민 역사가 한 세기를 지났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차세대는 한국어를 잃어가고 있다. 언어뿐 아니라 뿌리 의식을 심어주려는 노력 역시 약화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기사를 한글판뿐 아니라 영문판으로도 제작했던 이유다.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기사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인 2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본지의 아시안 역사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자녀들과 꼭 공유했으면 한다. 이민 역사, 이민자의 미국 사회 발전에 대한 기여, 한인의 정체성 등에 대한 내용이 2세들의 뿌리 찾기 과정에 첫 단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뿌리를 안다는 것, 곧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자부심 이민사 한인 이민사 이민 선조들 한인 사회

2024-01-15

[신년 사설] 대전환기의 한인 사회, 재도약의 길 찾자

미주 한인사회가 큰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1세 중심에서 차세대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점차 새로운 얼굴들이 커뮤니티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차세대의 활동 반경은 넓습니다. 이미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랜 이민사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1세들의 역할은 컸습니다. 맨주먹으로 토대를 닦고 피와 땀과 열정으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그 덕에 이제 한인사회는 주목받는 커뮤니티 반열에 올랐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한인사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1세들의 은퇴가 늘고, 신규 이민은 감소하면서 한인사회의 인구 지형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해법은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1세들의 빈자리는 차세대가 채우는 것이 순리입니다.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자연스러운 ‘역할 이전’이 가능합니다. 거기에 한인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차세대로의 중심 이동이 단순히 세대의 변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인사회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차세대를 한인사회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환기의 한인사회와 동행하기 위해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는 미주중앙일보는 이제 100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사업과 행사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온라인 영문 뉴스도 대폭 확대합니다. 한인 차세대를 커뮤니티로 이끌고, 우리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자임하겠습니다. 그것이 한인 언론의 존재 이유라고 믿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한인사회의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또 한 해를 맞았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큽니다. 다행히 경제상황도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올해 치러지는 한국 총선과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인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인들에게는 ‘극복의 지혜’라는 DNA가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려도 헤쳐나갈 수 있는 저력입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한인사회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신년 사설 대전환기 재도약 미주 한인사회 한인 사회 한인 차세대

2024-01-01

[사설] 한인 정치인엔 한인 사회가 먼저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일부 한인 정치인이 한인 후보의 경쟁자를 공식 지지하고 나서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이들은 “당 지도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옹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내년에 연방하원의원(47지구)에 도전하는 데이브 민 가주상원의원은 가주상원 37지구 선거에서 최석호 후보의 경쟁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또 연방하원 40지구 선거에서도 3선에 도전하는 영 김 의원의 경쟁자를 공식 지지하고 있다. 이런 민 의원은 반대의 상황에도 직면했다. 본인이 후보로 나선 연방하원 47지구 선거에서 미셸 박 스틸 의원이 그의 경쟁자 지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연방상원에 도전한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의 행보도 주목된다. 그는 가주 연방하원 34지구에 도전하는 데이비드 김 후보의 경쟁자를 지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소속 정당이 다르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데이브 민 의원은 민주당인 반면, 최석호, 영 김, 미셸 박 스틸 후보는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당의 요구가 있으면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굳이 공식적인 지지 입장까지 밝히는 것은 지나치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19년 치러진 LA시 12지구 시의원 보궐선거에서 데이비드 류 당시 시의원이 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적극 지지한 것이다. 류 전 시의원은 “정치적 소신에 따른 선택이었다”고 밝혀지만 한인 유권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그 후 류 전 시의원을 바라보는 한인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게 변했다.       한인 사회는 한인 후보라면 당적을 떠나 지지해 왔다.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서는 많은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토양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과도 가능했다. 한인 정치인이라면 이런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의 요구’니 ‘정치적 소신’이니 하는 주장은 한인 사회보다 본인의 당내 입지만 생각한 것이다.   사설 한인 정치인 한인 정치인 한인 사회 한인 후보

2023-12-27

[중앙 칼럼] 덕을 쌓고 복을 나누는 일

2023년 한 해도 벌써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는 고금리에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부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연말은 연중 기부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지만 올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의 한 발표도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중산층 이상이 많은 어바인 지역도  거주자의  연간 기부금 액수가 소득의 2%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만 중위소득이 17만5012달러인 지역만 연 소득의 3.22%인 5635.38달러를 교회나 소외 계층을 위해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부는 사회복지 및 사회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자원봉사 및 사회공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간주한다. 다양한 기부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남가주 한인 사회에는 ‘기부왕’으로 불렸던 고 홍명기 회장이 있었다. 고인은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건립 등 한인 사회의 역사를 알리고 보존하는 일은 물론 폐교 위기를 맞았던 남가주학원 살리기 등 차세대 육성 사업에도 항상 앞장서 지원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21년 별세한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분들이 많다.   1월7일 어바인에서 ‘금난새 신년음악회’를 여는 김종섭 서울대 총동창회장도 기부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다. 김 회장은 지난 18년 동안 모교인 서울대와 대한적십자 등에 약 140억 원을 기부했으며, 지난해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 성금으로 10만 달러를 쾌척했다. 그는 이번 ‘금난새 신년음악회’도 단지 동창 모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헌을 위해 나눔을 전하는 행사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음악회를 통해 재난 구호 성금 모금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인 사회에도 기부 문화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며 “나눔을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복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덕이 쌓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부는 단순한 자금의 이동이 아닌, 사회적 가치의 전달과 연결, 그리고 함께 사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 성장은 자본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사회의 계층화 현상을 낳고 있다. 기부는 이런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해 통합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기부 문화 확산에 젊은 세대가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인  MZ세대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더 내미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여론조사 기관 바나그룹이 2021년 전국 성인 21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3개월 동안 자선단체에 봉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Z세대(1997~2012년)는 54%, 밀레니얼 세대(1980~1996년)는 41%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부모세대인 X세대(1960년대 중반~1970년대 후반)는 35%, 조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21%로 나타나  MZ세대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 속담에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사회의 발전과 공익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분들이 많아질 때 한인 사회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부’라는 온정의 손길이 많아져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한 연말연시를 맞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내년은 올해보다 기부 활동이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예진 / 사회부 기자중앙 칼럼 연중 기부활동 한인 사회 사회개발 분야

2023-12-21

[중앙칼럼] 묘지마저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 이민자

아시아계 이민 사회도 미국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그런데도 가장자리로 밀려나야 했다.    포틀랜드에서 모퉁이로 내밀렸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 수첩에 빼곡히 적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반면, 묘비는 말하고 있다. 인생이 응축된 흔적이라 그렇다.     포틀랜드 지역 론 퍼(Lone Fir) 묘지 구석 자리엔 ‘블록 14’로 불리는 구역이 있다. 묘비조차 없는 곳이다. 중국계 이민자의 역사가 영원히 지워질 뻔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중국계 초기 이민자들이 묻혀있던 땅이었다. 1867년부터 1927년까지 중국계  2892명이 묻혔다.     정부가 이 땅을 콘도 단지로 개발하려 하자 중국계 커뮤니티가 막아섰던 과정을 최근 취재했다. 이는 이민자들의 단순한 투쟁기가 아니다.   블록14는 론 퍼 묘지 내에서도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묘지마저 이방인 취급을 받는 구역이었다. 그들은 죽어서까지 외면받는 처지였던 것이다.   중요하다면 절대로 지울 수 없다. 블록 14를 갈아엎으려 했던 이야기는 모퉁이 땅에 묻혀있던 아시아계 이민자의 역사를 주류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민자는 미국 역사의 전체 맥락에서 그런 식으로 모퉁이 취급을 당했다.   중국계는 그러한 인식에 반기를 들었다. 차별보다 심각한 건 배제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물리적 압박을 가하는 행위보다 더 무서운 건 역사에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일이다.   중국계 이민자들은 그 지점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민사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중국계 커뮤니티가 지난한 투쟁을 벌였던 이유다. 이번 기획 기사의 목적은 묘지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주류 사회내 암묵적인 아시안 차별 인식의 기저까지 접근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계 이민자가 오리건 주에 처음 도착한 것은 1851년이었다. 그들은 철도를 놓고, 도로 건설과 강둑을 짓는 힘든 일에 동원됐다. 이민자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터다.   현재 포틀랜드의 중국계는 이민  4~5세대가 대부분이다. 이미 그들의 언어를 잃은 지도 오래됐다. 하지만 블록 14의 보존 과정에는 언어는 잃었어도 정체성과 이민 역사마저 잃을 수 없다는 그들의 절박함이 배어있다.   실제 포틀랜드 지역 차이나타운은 본연의 색이 희미해진 지 오래다. 아니 사실상 흔적만 남아있다. 너덜너덜해진 색바랜 한자 간판이 텅 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포틀랜드 중국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한인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곧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한인 사회에도 이미 언어를 잃은 2세, 3세대가 생겨나고 있다. ‘한인타운’의 개념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한인들의 생활권이 넓어지면서 더는 한인 다수 거주 지역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지리적으로 한인 사회의 구심점이 됐던 시대도 지났다.   미주 한인 이민 역사는 올해로 120년에 이른다. 이 시점에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이민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열망이 있었는지 말이다. 변변한 박물관 하나 없는 게 한인 사회의 현실이다.     한인 이민자가 미국 역사에 어떻게 공헌했는지도 깊이 있게 연구해봐야 한다.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남기고, 알리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오늘의 현실도 미래에는 흔적이 된다.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흔적마저 사라지고 만다. 한인들의 이민 역사도 얼마든지 블록 14처럼 강제로 지워질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미국 문화에 젖어 살더라도 역사만은 잃어선 안 된다. 블록14의 이야기는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려면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한다. 단순히 증오범죄 현상을 규탄하는 팻말보다 중요한 건 미국 역사 속에서 한인 이민자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알려야 한다.     포틀랜드의 중국계 커뮤니티가 지켜낸 건 단순히 땅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 곧 이민자들의 역사였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모퉁이로 아시안 아시아계 이민자 초기 이민자들 한인 사회

2023-11-12

[디아스포아 시선] 한미동맹 70주년 (3) 1953년에 멈춘 인식 극복해야

올해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낯선 이야기를 했다. 한반도가 일본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미동맹 70주년’을 강조하며 한미관계를 해방 서사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이다. 광복은 한미동맹보다 8년 앞선 일이라 그 연계성이 불분명함에도 ‘동맹’이라는 단어를 6번이나 사용했다.     필자는 앞선 기고문에서 한미관계의 서사는 한미관계에 가장 큰 주인의식을 가진 미주 한인들의 서사를 통해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미관계의 본질을 한미동맹이 체결된 1953년으로 규정하는 것은 미국을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구원자’로, 대한민국은 ‘구원받은 대상’으로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양국 관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한인들에게 2023년은 한미동맹 70주년인 동시에 한인 이민 120주년이기도 하다. 한인 사회에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건들이 다를 수는 있다. 여기서 탈식민주의 연구의 대가인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가 주장하는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관점에 집중해 보려 한다. 어떤 현상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진입점이 하나 이상일 경우 국가적 이념에 함몰되기보다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미관계의 시초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1882년일 것이다. 조약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이 침략을 받을 경우 조선의 안보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1905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태프트 육군 장관을 파견해 일명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함으로써 5년 뒤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를 묵인했다.     1903년은 미주 한인들에게 기념비적인 해다. 1월 13일 121명을 시작으로 그 후 2년 동안 7000여명의 조선인이 하와이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장훈련, 외교활동, 계몽운동, 성금 모금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반도의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 노동자로 미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며 한인 사회의 뿌리를 내렸다.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 사이도 한미관계는 의미심장한 시기였다. 해방 후 3년여간 미군정이 38선 이남을 통치했기 때문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 대사는 미군정기 중 벌어진 제주 4·3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일반적으로 한미관계의 출발점을 6·25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군정기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미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1953년 휴전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동맹의 기초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한국 고아들의 미국 입양이 시작했고 그 수는 20만 명에 달한다. 국가중심적 서사의 그늘에 가려진 미군 신부와 입양인들, 그들의 후손 역시 한미관계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는지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1965년도 주목해야 할 해이다. 미국의 개정이민법 통과로 한국 등 아시아권에도 이민 문화가 개방됐다기 때문이다. 이후 한인 이민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현재 200만 명이 넘는 미주 한인 사회 기반이 마련되었다.   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아마 1992년 4월 29일 것이다. ‘사이구’로도 불리는 ‘LA 폭동’이 발생한 날이다. 당시 한인 업소 2300여개가 약탈, 방화 등의 피해를 보았다. 한인 사회는 편향적 언론, 불공정한 사법제도, 무책임한 LA시 공권력과 제도적 인종차별의 최대 희생자가 되었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는 ‘사이구’를 통해 한인들은 ‘이민자’에서 ‘재미 한인’으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경제적 안정과 자녀 교육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한인들이 폭동 후 정치력 신장과 인종화합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국 사회의 책임 있는 소수민족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2020년 역시 상징적인 해로 기억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다섯 명의 한인이 연방하원에 도전해 네 명이 당선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들은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한미관계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아시안 대상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한인들은 범아시아게 미국인으로서의 소속감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는 한인들이 다양한 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인들은 정체된 하나의 지점이 아닌 변화하고 진화하는 여러 서사를 통해 한미관계의 긍정적 가능성은 물론 어두웠던 과거 역시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1953년에 머물러 있는 배타적 서사의 한계를 인식할 때이다.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디아스포아 시선 한미동맹 인식 한인 사회 한인 이민 미주 한인들

2023-09-05

[뉴스 포커스] ‘한인 사회’ 그리고 ‘한국 기업’

올 시즌 LPGA(여자프로골프) 투어에 데뷔한 신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로즈 장(Rose Zhang)이다. 남가주 아케디아 출신의 중국계인 그녀는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020년 US여자아마추어선구권 대회 우승,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 대학선수권 대회 개인전 2년 연속 우승 등 그야말로 화려하다. 스탠퍼드대학 출신으로 타이거 우즈, 미셸 위의 후배다.     하지만 장 선수가 스타로 떠오른 이유는 따로 있다. 프로 데뷔 대회에서의 우승이라는 기록 때문이다. 지난 5월 프로 전향을 선언한 장 선수는 다음 달 열린 LPGA 미주호 아메리카스 오픈에 처음 참가해 바로 우승을 차지했다. LPGA 투어 역사에서 프로 데뷔 대회 우승은 1951년 베벌리 핸슨이라는 선수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 선수의 우승을 누구보다 흐뭇하게 지켜본 곳이 있었다. 바로 미국 내 최대 중국계 은행인 이스트웨스트뱅크였다. 이스트웨스트뱅크는 장 선수의 스폰서 기업 가운데 하나다. 장 선수가 아마추어 시절에도 후원을 했지만 프로 전향을 선언하자 바로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계약을 발표하자마자 우승을 차지했으니 확실하게 투자 효과를 거둔 셈이다.     장 선수 골프복에 새겨진 이스트웨스트뱅크 로고를 보면서 한인 선수들이 생각났다. 요즘 LPGA는 물론 PGA투어에서 활약하는 한인 선수들이 꽤 있다. 한국에서 온 선수들이 아니라 미국에서 성장한 한인 2세 선수들 말이다. 아직 한국에서 온 선수들만큼 성적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이들도 종종 우승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골프복이나 모자에는 한인 기업의 로고가 없다. 한인 경제력이 많이 성장했다지만 아직 이들을 후원할만한 규모의 기업은 등장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한인 대기업’의 출현은 한인 사회가 도달해야 할 또 하나의 고지가 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라도 나섰으면 좋으련만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국 기업의 로고는 한국에서 온 선수들에게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골프 마케팅에 지출하는 비용도 상당한 규모다.  현대와 CJ그룹은 매년 PGA투어 대회인 제네시스 오픈과 CJ컵을 주최하고 있고, 롯데를 비롯한 몇몇 기업도 LPGA대회를 주최한다. 그런데도 한인 선수 후원에는 인색해 보인다.      물론 홍보도 투자다.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기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의 행보도 일면 이해는 간다. 그들 기준에서 보면 한인 선수들의 스타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LPGA와 PGA 투어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면 세게 정상급 골프 선수라고 봐야 한다.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미래를 보고 투자를 검토할 만 하지 않은가.        다만 이런 현상이 혹시 한인사회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과거 한국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이들의 한인 사회에 대한 인식을 요약하면 세 가지 정도였다.  “한인사회와 밀접하게 지내면 괜히 구설에 오를 뿐 결코 득 될 것이 없다”, “우리는 미국 내 한인 시장 규모에 맞게 마케팅 비용을 쓰고 있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고 있는데 굳이….”     물론 지금은 이런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인 시장의 가치를 알아보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초기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는 미국 시장에서 한인 사회는한국 기업의  ‘테스트 마켓’ 기능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인력 공급처의 역할도 한다. 실제로 한인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국 시장으로 진출한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한국 기업의 로고가 부착된 골프복을 입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한인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한인 사회와 한국 기업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될 것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한인 사회 한인 선수들 한국 기업들 한인 사회

2023-07-27

"노동법 몰라 피해 안 보게 한인 옆에 있겠다"

로펌에 몸담고 있을 때 늘 아쉬움이 있었다.   한국어로 도움이 필요한 의뢰인이 많았지만, 조직 시스템상 일일이 도와주는 게 쉽지 않았다.   지니 강(37) 변호사의 이야기다.     캘리포니아는 노동법이 엄격한 주로 꼽힌다. 강 변호사는 소송을 맡을 때마다 한인 사회 내에서 노동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을 여러 번 체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글’이다.     강 변호사는 그러한 한인들을 위해 업무가 끝나면 블로그와 웹사이트 등에 개인적으로 노동법과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복잡한 노동법을 일목요연하고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딱딱한 기존의 법률 칼럼과는 달랐다. 구어체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때론 질의응답 형식으로도 썼다.   좋은 글은 반응을 끌어낸다. 한인들이 상담 요청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 자체가 보람이었다. 법이 일상과 밀접한 미국 사회에서 한국어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한인 변호사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긍심이다.   강 변호사는 “로펌에서 근무하며 노동법 사건은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이 아닌, 모든 사건이 고유하고 지극히 개인적 사례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많은 직장인이 노동법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권리를 침해당해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대처 방법을 모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이는 강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리하는 역할을 넘어 젊은 변호사로서 역할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1세대가 지고 점차 세대교체 중인 한인 사회에 피고용인의 권리에 대해 교육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현재 강 변호사는 개인 웹사이트(jinnikanglaw.com)를 비롯한 미시USA, 잡코리아 USA, 워킹US 등에 노동법과 관련한 글을 꾸준하게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베벌리힐스 지역에 개인 사무실을 개업하고 한인들을 돕고 있다.   가주 지역 로펌인 멀리스&팍에서 일했던 강 변호사는 30대인 나이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특허정보원 등에서 국제언론담당관으로 근무했다. 세계 곳곳의 언론계와 접촉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은 알기 쉽고 정돈된 글을 쓸 수 있는 초석이 됐다.   강 변호사는 “UCLA에서 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다가 법을 알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로스쿨로 방향을 틀었다”며 “소송에서 이기는 것에 대한 매력도 있어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는 학창 시절부터 남달랐다. 늘 우등생이었다. 서울대학교(언어학 학사·석사)에서 ‘최우등 졸업(summa cum laude)’의 영예를 얻었다. 사우스웨스턴 법대에서는 상위 10% 내 졸업생으로 선정돼 헌법학 부문 CALI상, 학장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강 변호사는 “피고용인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앞으로도 이기는 싸움을 계속하고 싶다”며 “한인들이 노동법을 잘 몰라 피해를 보지 않도록 계속 글을 통해서도 더 많은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지니강 변호사 한인 변호사 한인 사회 노동법 전문

2023-07-17

[취재 수첩] 총성 울리자 하나로 뭉쳤다

댈러스 인근 캐롤튼 지역은 신흥 한인타운이다.   한인 마켓, 식당, 은행, 미용실 등이 즐비하다. LA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식당 ‘맛객’을 운영 중인 정민규 대표는 “앨런 아웃렛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주말임에도 이곳이 순식간에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한인사회에 미친 충격은 그만큼 컸다.   댈러스 지역 한인사회는 최근 그 규모가 확장되고 있다. 가주 등 곳곳에서 한인이 몰리는 추세다.   에이스 부동산 앤디 오 대표는 “지난 수년간 인구 유입이 급격히 늘면서 요즘은 모르는 한인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로 한인 간 유대감은 다소 약화할 수 있었겠지만, 총성이 울리자 응집력이 강화됐다.   피해 일가족과 일면식이 없어도 분향소를 찾아 조화를 놓고 간 한인만 수백명이다. 주류사회 곳곳에서 한인 사회와 접점 없이 활동하던 2세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1세대와 연대해 촛불 시위 등을 주최했다. 유가족이 관리 중인 기부 사이트에 십시일반 힘을 보탠 한인들도 많다.   한인들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타인종과 다소 차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 중 절반(4명)이 한인 일가족 등 아시아계다.     이면에는 이민자로서 아픔을 이해하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한인들은 대체로 총기에 이질감을 갖는다. 총기 소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텍사스주 분위기에 대한 심리적 반발도 한몫한다. 게다가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피해 의식, 두려움 등은 이번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잣대로 사용됐다. 댈러스 모닝뉴스 등 지역 주류 언론들도 그러한 관점에서 한인 사회를 조명했다.   물론 댈러스 한인사회는 확장과 맞물려 목소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일례로 미술관은 지역사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창구다. 댈러스미술관(DMA)의 아시아 전시관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이 여러 아시아 국가의 전시품이 있는데 한국만 없다. 동아시아 지도를 보니 ‘일본해’가 명시돼 있다. 댈러스 한인문화회관 한편에 설치된 독도 실시간 영상관의 효과적인 홍보도 시급해 보인다.   성급할 필요는 없다. 발전과 성숙은 시간을 수반하고 함께 간다. 전국적으로 급부상하는 댈러스 한인사회는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그렇게 여물고 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취재수첩 여물어가 댈러스 한인사회 댈러스 지역 한인 사회

2023-05-15

쿼크-실바 가주하원의원 “한인 후보와 경쟁에도 한인 잘 돌볼 것”

섀런 쿼크-실바 의원은 한인사회와 인연이 깊다. 남가주 내 한인 인구집중률이 가장 높은 풀러턴에서 2004년부터 시의원, 시장으로 일했고 2012년부터는 가주 하원에서 일해왔다. 그동안 선거에서 2명의 한인 후보와 세 번의 경쟁을 벌여 한인들은 그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때론 상대 한인 후보에게 표를 줬다.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다. ‘미국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서 선거, 한인 사회, 향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역구에 가장 큰 관심과 이슈는 무엇인가.     “홈리스, 주택, 정신 건강 문제다. 주거 공간이 부족하고 기존의 가격은 너무 높아졌다. 핵심은 시니어나 사회 초년생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저소득층을 위한 공간을 만들도록 시정부와 손잡고 지속적인 설득을 하고 있다. 정신 건강은 약물 중독 문제와 밀접하며 나이와 상관없이 큰 문제다.”     -20년 동안 선출직으로 OC 한인사회를 지켜봤다. 어떤 기억들이 있나.     “한인들은 라틴계 커뮤니티와 유사하게 가족을 중시하고, 열심히 일하며, 커뮤니티에 많은 비즈니스가 창출되는 데 힘쓰고 있다. 동시에 문화적으로 매우 풍부하다. 태권도의 날, 한글의 날, 김치의 날, 한복의 날 등을 주의회에서 추진했으며, 2018년 한국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영 김 의원과 두번 경쟁하고 유수연 교육위원과 지난해 경쟁했다. 중앙일보와 많은 한인 유권자들이 유 후보를 지지했었다. 한인사회와 가깝게 일해온 입장에서 조금 서운하거나 배신감도 없지 않았는지.       “여성의 정치 진출은 항상 환영할 일이다. 두 후보 모두 존경받고 있으며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다.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유권자가 자신과 같은 언어, 문화를 가진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후보가 강조하는 가치와 정책들을 더 깊게 살펴보고 선택해야 한다. 특히 총기 규제, 저소득층 주거공간, 시니어 보건 정책 등 일상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것들을 지켜보고 판단해주면 좋겠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청년들은 가끔 ‘민주당을 택할 것인가, 한인 후보를 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 중요한 것들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관내 초등학생들은 총기 난사 시 대피 요령을 배운다. 만약 정치권과 어른들이 총기 규제를 잘했다면 이런 일들이 있겠나. 교육과 가족을 중시한다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정확히 제시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온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정답이다. 민주, 공화, 한인, 라티노 구분을 넘어서 정책 내용과 활동 기록을 냉정하게 보고 결정하시면 좋겠다.”     -가주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한국 관련 기념일을 많이 제정하고 알렸다. 어떤 의미인가.     “한인사회를 잘 알고 있는 박동우 수석 보좌관이 한인들을 대변해 좋은 아이디어를 내준 것이 핵심이다. 120년을 넘긴 이민 역사를 통해 한국의 것들이 많이 알려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뿌듯한 것이다. 최석호 의원과도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의미를 더했다. 나 자신이 한인이 아니어도 지역 한인 주민들을 잘 돌볼 것이다.”   -‘미국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가 추진될 때 초창기부터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훌륭한 기념비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한인사회가 큰일을 해냈으며 풀러턴 시에서도 큰 지원을 해줘서 가능했다. 미국의 참전 영웅들을 한인들이 기억하고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서부를 여행하는 많은 분이 방문하는 곳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곳이다.”   -상원 또는 연방 진출 이야기도 나온다. 다음 행보는.   “내년에 다시 67지구에 다시 출마한다. 이제까지 해온 많은 일을 지속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지역구 주민들과 한인사회를 도울 수 있어 영광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배신감 쿼크 한인 후보 한인 사회 선거 한인

2023-05-10

[기고] 조국 발전과 한인 사회 위상은 비례한다

한인의 미국 이민 역사는 1902년 하와이에 도착한 102명으로 시작됐다. 그나마 16명은 병으로 귀국해 실제로는 86명인 셈이다. 현재 미국 내 한인 인구는 200여만 명에 이른다. 한인 사회는 이승만 초대대통령, 도산 안창호, 서재필 박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조국의 발전과 함께 한인 사회의 위상도 점차 달라졌다. 지금은 한인 연방하원 등 정치는 물론 경제·과학·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들이 많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정상이 보여준 5박7일간의 일정은 한국은 물론 한인 사회의 위상도 더 높였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회연설은 미국인들에게는 비전과 감동, 친근감을, 한인들에게는 자긍심을 주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윤 대통령은 미국의 위대한 친구”라며 “경제협력과 집단방위에 대한 한국의 약속은 두 나라의 관계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이 한미동맹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 등 정부 정책, 국민의 희생과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한미동맹 덕에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 위협에도 지속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침공으로 한국이 위태로울 때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라의 자유민주주 수호를 위해 소중한 목숨까지 바쳤다”며 “한미 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의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 연설에서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하버드인을 기억하고 있다”며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18명의 이 대학 졸업생들을 추모했다. 그중 동아시아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6·25 전쟁에 자원입대해 28세의 나이로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손자 윌리엄 캐머런 쇼와 그의 어머니 캐럴 캐머런 쇼를 초청해 관심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여 깊이 감사드린다”며 “고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미동맹은 단순히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편의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동맹’”이라고 강조하며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동맹,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동맹”이라고 말했다.   한미동맹 70주년인 올해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혈맹으로 맺어진 한미동맹 본연의 모습을 찾은 것 같아 의미가 새롭다. 윤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그동안의 양국 역사를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한반도의 위협 요소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과 핵 협박은 한반도뿐 아니라 주변국,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이러한 전체주의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북한 내 참혹한 집단적 인권 유린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미국의 핵우산을 명문화한 ‘워싱턴 선언’은 한미동맹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임이 틀림없다. 이 선언은 미국이 동맹국의 핵 억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담고 있다. 또 이 선언은 미국 대통령이 약속한 최초였다. 한미관계를 안보·경제·기술·문화·사이버 동맹을 포괄하는 글로벌 파트너로 도약시킨 가장 성공적인 정상외교였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조국의 위상과 한인 사회 위상이 비례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조국 발전 한인 사회 한인 연방하원 한미동맹 70주년

2023-05-08

[중앙시론] 상처와 교훈을 동시에 준 ‘4·29 LA폭동’

지난해 4월은 사이구(4·29) 폭동 30주년으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다. CNN, LA타임스, NPR, AFN 등을 비롯해 한인 언론들, 그리고 한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다. 특히 CNN은 2시간짜리 사이구 30주년 특집 다큐를 제작했는데 1시간은 한인 사회를 집중 조명했다. 폭동 이후 3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한인 사회 모습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만큼 한인 사회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 한·흑 갈등에 질문의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작년에는 한인 사회의 변화와 위상에 대한 궁금증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급증하면서 아시안 아메리칸, 특히 한인 사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UCLA 아시안 아메리칸 센터는 사이구 폭동 30주년을 맞이해 한인 기자들의 시각으로 본 특집 편저 책을 준비했는데 필자에게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논문을 써 달라는 부탁이 와 몇 번의 수정 작업을 한 후 최근 출판이 되었다. 이 책의 앞뒷면은 퓰리처상을 2번이나 수상한 강형원 전 LA타임스 기자의 사진으로 꾸몄다. 폭동 당시 한인들이 합심해 한인 상가의 불을 끄는 모습이다.  당시 한인 타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소방차와 경찰이 출동하지 않아 한인들 스스로 화재 진압에 나서야 했다. 이 사진은 당시 한인 사회의 피해에 대한 관계 기관의  무관심과 방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논문을 통해 사이구는 흑·백의 문제를 넘어 한인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교훈을 던져준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31주년이라 별다른 행사가 없었다.  그런데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이구를 역사적으로 되새기며 차세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사이구 폭동은 미주 한인 사회 100년사에서 가장 큰 상처와 교훈을 준 역사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기억하며, 차세대들에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될 공간이 없는 것이다.   한미박물관은 1990년대 이후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 LA시로부터 한인타운 6가와 버몬트의 시 소유 주차장 부지를 1년 1달러의 임대료로 50년간 장기임대를 받았다. 한미박물관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이어 본격적인 기금 모금이 시작되었고 한인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은 듯했으나 설계가 4번이나 바뀌는 등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커뮤니티 사업으로 진행되며 성공적인 기금 모금 활동 등을 통해 완공한 일미박물관, 아르메니아박물관과 대조된다.     일미박물관은 일본계 커뮤니티, 정치권,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합심해서 이루어낸 훌륭한 역사적 업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0대대 출신으로 일본계 미국인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던 고 김영옥 대령도 일미박물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고, 그는 한미박물관 설립 사업 초기 배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안 박물관은 사업 시작 7년 만에 문을 열어 한인 사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성공적인 기금 모금과 정치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밑바탕이 됐다.     한미박물관이 계획대로 완공되었다면 사이구 관련 각종 행사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사는 물론 폭동 관련 전시물과 강연, 그리고 영상 등을 통해 한인 사회가 경험한 아픔을 차세대와 타 커뮤니티와 공유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차세대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이구 폭동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차세대들에 올바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미박물관은 일부 이사들이 아니라 한인 사회가 주인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기금 모금 등에 차세대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는 한미박물관등의 건립과 운영은 차세대들이 주도하고, 1세대들은 기금 모금과 정부 등의 매칭 펀드 확보에 주력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구 폭동 31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제 우리의 숙원인 미주한인사 정립 및 보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배처럼 정처 없이 표류하게 된다. 상처와 교훈을 동시에 던져준 사이구의 역사적 의미를 통해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역사의식에서 출발하고 가능하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la폭동 상처 한인 사회 사이구 폭동 한인 언론들

2023-05-01

'NCA를 빛낸 졸업생' 첫 수상자 선정

LA한인타운 유일의 한인 운영 사립학교인 NCA(New Covenant Academyㆍ새언약학교)가 지난 17일 2명의 졸업생을 'NCA를 빛낸 졸업생'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NCA는 역사와 전통을 널리 알리고 학교 발전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 기획했으며 졸업생에게는 영예, 재학생에겐 목표, 교직원에겐 자부심을 고양하는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정된 첫 번째 주인공들은 이 학교 1회 졸업생인 조셉 구(38)씨와 제인 민(31)씨다.   현재 변호사로 활약 중인 조셉 구씨는 2003년 졸업 후 페퍼다인에 진학하고 공인회계사(CPA)가 됐으며 이후 NCA로 돌아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했다. 이후 법대를 나와 검사로 근무하고 현재는 한인사회에서 유명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NCA와 학생, 직원, 학부모로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하고 있다"면서 "가족 같은 환경과 특별한 멘토십 통해 많은 배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독특하고 비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제인 민씨는 현재 결혼 후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데 UC샌디에이고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국제백신기구를 거쳐 현재는 바이오제약사인 펩트론에 근무하고 있다. 민씨는 "학우 간의 경쟁도 치열했고 뒤처지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며 "적극적인 조언을 해준 선생님들 덕분에 자립심과 책임감,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토론 수업을 통해 배양한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영어능력이 대학과 사회생활을 하는데 강점으로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제이슨 송 NCA교장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NCA가 내년에 25주년을 맞는다"면서 "많은 졸업생들이 한인 사회는 물론 주류 사회, 한국에서 활약을 하고 있어 모교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고 제정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또 "졸업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특히 졸업생들이 자신의 자녀를 입학시키는 등 학부모로 돌아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NCA측에 따르면, 이번에 선정된 졸업생들은 오는 5월에 거행되는 졸업식에서 후배들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롤모델 역할을 나누게 된다. 개교 25년을 맞는 내년에는 기념 행사에도 초청돼 NCA의 새로운 25년을 함께하게 된다. NCA측은 앞으로 매년 'NCA를 빛낸 졸업생'을 선정해 기념 액자를 헌정하는 방식을 통해 '명예의 전당'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NCA스쿨은 지난 1999년에 설립했으며 초중고 과정은 물론 킨더가튼과정까지 개설돼 있는 소수 정예 사립학교로 타인종 학생은 25%이고 한인 타운에서는 국제학사과정(IB과정)을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운영 중에 있다. 장병희 기자졸업생 수상자 la한인타운 유일 한인 사회 서울대 대학원

2023-04-18

[뉴스 포커스] 한인 1세들이 해야 할 마지막 임무

‘한인 1세 성공신화’의 주인공 근황을 오랜만에 접했다.  한국 관련 서적과 자료 구매에 사용하라며 UC버클리 도서관에 100만 달러를 기부해 화제가 된 이종문 암벡스벤처파트너스 회장이다. 이 회장을 처음 만났던 것은 2000년쯤이다. 당시에도 그는 유명 인사였다. 40대 후반에 도미, 50대에 벤처기업 창업, 60대 중반 거액에 회사 매각,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에 1600만 달러 기부 등의 이력 때문이다. 북가주에 거주하는 이 회장이 LA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 요청을 했다.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더니 이동 시간이라도 가능하겠냐는 답이 왔다. 그의 약속 장소까지 모셔다드리기로 하고 호텔로 찾아갔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 회장은 책 한권을 내밀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수들과 공저한 ‘실리콘밸리 에지(Silicon Valley Edge)’라는 책이었다. 그러면서 “나와 인터뷰를 하려면 이 책 먼저 읽어봐야 한다”는 농담을 건넸다.     인터뷰 시간은 30분 남짓. 운전까지 해야 했던 상황이라 메모 대신 기억력에 의존한 인터뷰였다. 그런데 출발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심 놀랐다. 거침없는 달변에 뛰어난 기억력, 힘이 담긴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때 이 회장은 이미 70대 초반의 나이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성공담보다 실패 극복기였다. 사업이 망해 생활고로 두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었다고 했다. 형님(고 이종근 전 종근당 회장)이 부자인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자존심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성공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 대목이었다.   그 후 이 회장이 나라은행(현 뱅크오브호프로 통합)의 이사장이 되면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몇 년 뒤 이사장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한인사회와도 멀어졌다. 그런 그가 2007년 연방하원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 회장과의 20여 년 전 일은 한인 사회에 대한 기억도 소환했다. 1세들이 맹활약했던 당시와 지금의 한인 사회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한인 1세들은 이제 하나, 둘 무대 중앙에서 내려오고 있다. 혹자는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한인 사회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안정’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성장 동력의 약화’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듯해 반갑지만은 않다.      한인 사회의 정체성은 이 회장과 같은 1세들의 뚝심과 의지, 인내와 노력에 있다. 그들의 치열함이 지금 한인 사회의 토대가 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체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는 것 같다.      물론 과거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솔직히 1세들이 그야말로 팔팔하던 시절, 한인 사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다투고 부딪히는 일이 늘 벌어졌다. 종종 법에다 호소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보였지만 열정과 에너지는 넘쳤다. 서로 방법은 달랐지만 목표는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1세대 주인공들은 은퇴하는데 이들을 대체할 주연 배우들의 모습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1세와 2세가 서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대 간 문화 차이, 의사소통의 문제 등등을 말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모자람 없이 자란 2세들에게 1세들이 경험했던 치열함을 따르라고 주문하는 것도 무리다.    ‘한인 사회’라는 울타리가 왜 중요한지 2세들에 알려주는 게 1세들의 마지막 임무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이다.   커뮤니티 차원의 이벤트도 필요하지만 자녀들에게 한인과 한인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한인 임무 한인 사회 한인 1세들 시절 한인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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